스테이블코인 시가총액이 4년 만에 처음으로 줄었습니다. 그런데 같은 기간 거래량은 사상 최대를 기록했고, 페이팔은 하필 지금 ‘스테이블코인 공장’을 열었습니다. 나흘 뒤 미국 상원 표결이 이 모순의 다음 장을 결정합니다.
왜 지금인가: 나흘 뒤, 워싱턴에서 열리는 한 번의 표결
오는 9월 15일 미 동부시간 오후 2시 15분, 미국 상원은 디지털자산시장 명확성 법안(CLARITY Act)의 본회의 상정 동의안에 대한 토론종결(cloture) 표결을 실시합니다. 존 튠 공화당 원내대표가 8월 8일 토론종결 동의를 제출하면서 잡힌 일정입니다. 통과에는 60표가 필요하고, 공화당 의석은 53석입니다.
공교롭게도 이 표결을 앞둔 일주일 사이 세 가지 일이 겹쳤습니다. 9월 9일 페이팔은 파트너사와 함께 기업이 자체 스테이블코인을 찍어낼 수 있는 플랫폼 PYUSDx를 정식 출시했습니다. 같은 날 독일 연방재무부는 10년 넘게 유지해온 1년 보유 비과세 규정을 없애고 25% 단일세를 매기는 법안 초안을 내놨습니다. 그리고 한국에서는 디지털자산기본법 정부안의 9월 발의가 연내 입법의 분수령으로 지목되고 있습니다.
이 글은 세 가지 질문에 답하려 합니다. 첫째, 스테이블코인 시가총액이 4년 만에 처음 줄어든 진짜 이유는 무엇인가. 둘째, 시장이 축소되는데 페이팔 같은 결제 기업은 왜 지금 발행 인프라에 베팅하는가. 셋째, 9월 15일 표결이 어떻게 끝나든 한국 투자자가 실제로 추적해야 할 지표는 무엇인가입니다.
4년 만의 첫 축소: 숫자가 말하는 것과 숨기는 것
먼저 사실관계부터 정리하겠습니다. 2026년 8월 13일 기준 스테이블코인 전체 시가총액은 3,080억달러로, 1년 전 2,694억달러 대비 14.3% 증가했습니다. 연간으로 보면 여전히 성장한 시장입니다. 그런데 분기와 월 단위로 내려가면 그림이 달라집니다.
6월 한 달 동안 시가총액은 77억달러 감소했습니다. 4년 만의 최대 월간 감소폭입니다. 5월 이후 10주에 걸친 감소분을 합치면 약 100억달러이며, 이는 6개월 만의 최저 수준에 해당합니다. 코인데스크가 “4년 만에 처음 나타난 지속적 축소”라고 표현한 국면입니다.
여기서 대부분의 기사가 ‘스테이블코인 수요 둔화’라는 결론으로 넘어갑니다. 그러나 같은 달 데이터를 하나만 더 보면 해석이 뒤집힙니다. 6월 조정 거래량은 사상 최대인 1조7,900억달러를 기록했고, 그중 USDC가 67%를 차지했습니다. 잔고는 줄었는데 돈이 오간 규모는 역대 최대였다는 뜻입니다.
이 둘은 모순이 아닙니다. 시가총액은 재고(stock)이고 거래량은 회전율(velocity)입니다. 같은 1달러가 한 달에 열 번 돌면, 잔고가 절반으로 줄어도 거래량은 다섯 배가 될 수 있습니다. 스테이블코인이 ‘쟁여두는 자산’에서 ‘흘려보내는 결제수단’으로 성격이 바뀌고 있다는 신호입니다.
범인은 ‘이자 금지’ 한 줄: 제도가 만든 자본 이동
그렇다면 빠져나간 잔고는 어디로 갔을까요. 답은 2025년 7월 18일 서명된 지니어스법(GENIUS Act)의 한 조항에 있습니다. 이 법은 스테이블코인 발행사에 현금과 단기 미국채로 1대1 준비금을 쌓고 월간 감사 보고서를 내도록 요구하는 대신, 보유자에게 이자를 지급하는 것을 금지했습니다. 사실상 ‘좁은 은행(narrow bank)’으로 규정한 것입니다.
발행사는 준비금으로 미국채를 사서 이자를 받지만, 그 이자를 보유자에게 넘길 수 없습니다. 금리가 낮을 때는 견딜 만한 구조였습니다. 그러나 현재처럼 시장이 추가 금리 인상 가능성까지 가격에 반영하는 국면에서, 무이자 달러 토큰을 계좌에 쌓아둘 이유는 급격히 사라집니다. 자금은 같은 국채를 담보로 하되 수익을 돌려주는 상품으로 이동합니다.
실제 데이터가 이를 뒷받침합니다. 2026년 첫 두 달 동안 토큰화 국채 시가총액은 21억2,000만달러 늘어난 반면 스테이블코인은 11억9,000만달러 증가에 그쳤습니다. 토큰화 국채가 스테이블코인보다 절대 금액 기준으로 빠르게 성장한 것은 사상 처음입니다. 규제가 의도치 않게 만든 풍선효과인지, 예금 유출을 우려한 은행권의 요구가 반영된 설계였는지는 해석이 갈리지만, 결과는 분명합니다.
| 구분 | 확인된 수치 | 보유자 수익 | 의미 |
|---|---|---|---|
| 스테이블코인 전체 | 3,080억달러 (8/13 기준, 전년 대비 +14.3%) | 법상 지급 금지 | 연간 성장, 단기 축소 |
| 6월 월간 증감 | −77억달러 (4년 만의 최대 감소) | – | 잔고 이탈의 시작점 |
| 6월 조정 거래량 | 1조7,900억달러 (사상 최대, USDC 67%) | – | 결제·정산 수요는 오히려 확대 |
| 토큰화 국채 | 연초 89억달러 → 2026년 약 120억~150억달러 | 지급 가능 | 이탈 자금의 수령처 |
| 2026년 1–2월 순증 비교 | 토큰화 국채 +21.2억 vs 스테이블코인 +11.9억 | – | 사상 첫 역전 |
발행사들도 이 구조를 모르지 않습니다. 온도(Ondo)의 USDY는 2026년 1분기 기준 약 21억달러 규모로 성장했고, 에테나의 USDtb 역시 국채·펀드 수익을 보유자에게 흘려보내는 별도 상품으로 설계됐습니다. 지니어스법을 준수하는 결제용 스테이블코인으로는 할 수 없는 일을, 상품을 쪼개서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규제는 수요를 없앤 것이 아니라 수요가 담기는 그릇을 바꿨습니다.
9·15 표결의 실제 표 계산: 낙관론과 신중론이 갈리는 지점
이 지점에서 클래리티법이 등장합니다. 이 법안은 디지털 상품 현물시장에 대한 감독권을 상품선물거래위원회(CFTC)에 전속 부여하고, 투자계약형 자산은 증권거래위원회(SEC)가 맡도록 관할을 정리합니다. 무엇이 증권이고 무엇이 상품인지 8년간 이어진 다툼을 입법으로 끊겠다는 시도입니다.
낙관론의 근거는 실적입니다. 하원은 2025년 7월 294 대 134라는 압도적 표차로 이 법안을 통과시켰고, 상원 은행위원회도 5월 15 대 9로 가결했습니다. 포괄적 디지털자산 규제 체계가 의회 상임위를 통과한 첫 사례였습니다. 팀 스콧 은행위원장은 9월 통과에 “꽤 좋은 승산”이 있다고 말했고, 스콧 베선트 재무장관은 상원에 통과를 “강력히 촉구”하며 “실패하면 미국이 디지털자산의 미래를 주도할 의지가 없다는 신호를 동맹과 적 모두에게 보내게 된다”고 압박했습니다.
신중론의 근거는 산수입니다. 토론종결에는 60표가 필요하고 공화당은 53석입니다. 최소 7명의 민주당 표가 필요한데, 협상 창구인 민주당 의원 7인(앨소브룩스·부커·코르테즈 마스토·가예고·히켄루퍼·워너·워녹)은 “판을 떠나지 않았다”는 공동성명을 내면서도 윤리·소비자보호·불법금융 조항 강화를 조건으로 걸었습니다. 게다가 공화당 내부에서도 제임스 랭크퍼드, 마이크 라운즈 의원이 스테이블코인 관련 조항에 우려를 표했습니다. 공화당에서 한 표가 이탈할 때마다 필요한 민주당 표는 하나씩 늘어납니다.
여기서 시장이 가장 놓치기 쉬운 이면이 있습니다. 미해결 쟁점 목록에 ‘스테이블코인 리워드(보상)’ 조항이 올라와 있다는 사실입니다. 은행권 단체들이 변경을 요구하는 바로 그 항목인데, 이는 앞 절에서 본 자본 이동의 원인 그 자체입니다. 즉 9월 15일 표결은 단순한 ‘규제 명확성 호재’가 아니라, 무이자 구조를 유지할 것인가를 다시 묻는 자리이기도 합니다.
| 경로 | 성립 조건 | 근거 | 이자 금지 구조 |
|---|---|---|---|
| 가결 | 공화 53석 결집 + 민주 7표 이상 | 하원 294–134, 은행위 15–9 가결 이력 | 최종 문구에서 결정 (변수) |
| 부결 | 민주 협상파 이탈 또는 공화 이탈 확대 | 윤리·불법금융 조항 미합의, 랭크퍼드·라운즈 우려 | 현행 지니어스법 유지 |
| 재연기 | 표 부족 시 표결 자체를 미루는 선택 | 8월 휴회 전 이미 한 차례 9월로 연기 | 현행 지니어스법 유지 |
필자의 종합 판단은 이렇습니다. 세 경로 중 둘에서 이자 금지 구조는 그대로 남습니다. 그리고 가결되는 경우에도 무이자 원칙이 완화될지는 최종 문구가 나와야 압니다. 따라서 표결 결과에 방향을 걸기보다, 토큰화 국채로의 자금 이동은 당분간 계속된다고 전제하고 그 속도가 어떻게 바뀌는지를 보는 편이 합리적입니다. 표결은 방향이 아니라 속도를 조정하는 변수에 가깝습니다.
그런데 페이팔은 왜 지금 ‘발행 공장’을 열었나
시장이 축소되고 입법이 불투명한 국면에서, 페이팔은 오히려 정반대 방향으로 움직였습니다. 9월 9일 페이팔은 M0, 문페이와 함께 PYUSDx를 정식 출시했습니다. 2월 프리뷰를 거쳐 공개된 이 플랫폼은, 기업이 준비금 관리·규제 대응·블록체인 인프라를 직접 구축하지 않고도 페이팔USD(PYUSD)를 담보로 자체 브랜드 스테이블코인을 발행할 수 있게 합니다. 출시 시점에 이미 세 곳(Saturn·Concrete·Cap)이 발행 중이며 누적 처리액은 1억달러를 넘었습니다.
구조를 뜯어보면 의도가 보입니다. M0가 공용 인프라를 만들고, 문페이 디지털애셋(MoonPay Digital Assets Limited)이 상위 레이어 토큰을 발행하며 이를 뒷받침하는 PYUSD를 보유합니다. 페이팔은 기반 통화를 공급하는 자리에 섭니다. 발행사가 아니라 표준이 되겠다는 전략입니다. 잔고 경쟁이 아니라 회전 경쟁이라면, 승자는 가장 많이 쌓아둔 곳이 아니라 가장 많이 통과시키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다만 투자자가 반드시 짚어야 할 단서가 붙습니다. PYUSDx로 만들어진 토큰은 페이팔이나 팍소스의 상품이 아니며, 페이팔·벤모 지갑에서 사용할 수도 없습니다. 규제상 취급 역시 발행사와 관할권마다 다릅니다. ‘페이팔 스테이블코인’이라는 이름이 주는 신뢰가 실제 법적 보호로 이어지지 않을 수 있다는 뜻입니다.
PYUSD 자체의 궤적도 이 모순을 압축해서 보여줍니다. 2026년 3월 시가총액 약 40억9,000만달러로 전년 대비 680% 성장하며 70개 시장으로 확대됐지만, 3월 고점 약 42억달러에서 2분기에는 약 27억달러로 31% 감소했습니다. 시장 3위 사업자조차 잔고를 지키지 못한 것입니다. 그럼에도 발행 인프라에 투자한다는 선택은, 이 회사가 스테이블코인의 가치를 잔고가 아니라 통로에서 찾고 있다는 방증입니다.
조여오는 글로벌 과세와 한국의 시간표
제도는 미국에서만 움직이지 않습니다. 독일 연방재무부는 9월 9일, 10년 이상 유지해온 1년 보유 후 양도차익 비과세 규정을 폐지하는 법안 초안을 마련했습니다. 25% 단일 원천징수세(연대부가세 포함 26.375%)가 적용되며, 대상은 2026년 12월 31일 이후 취득분입니다. 기존 보유분은 경과규정으로 보호받는 구조입니다. 법은 2027년 1월 1일 발효되고, 서비스 제공자의 자동 원천징수는 2028년 1월 1일부터 시작됩니다. 대여·스테이킹 소득도 자본소득으로 분류되며, 재무부는 연 3억5,000만유로의 세수를 기대합니다.
한국의 시계는 더 느립니다. 디지털자산 관련 법안이 약 10건 발의됐지만 당정 통합안은 아직 국회에 제출되지 않았습니다. 금융위원회는 유동수 정무위원장 명의의 의원입법 형태로 9월 중 발의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며, 9월 공청회 → 11월 법안 논의 → 11~12월 초 입법 방향 확정이라는 일정이 거론됩니다. 9월을 놓치면 연내 처리가 사실상 어렵다는 것이 중론입니다.
쟁점은 다섯 가지로 압축됩니다. 발행자 자격과 은행 지분, 준비자산 구성과 도산절연, 환매권과 환매기한, 금융위·한국은행의 권한 배분, 해외 스테이블코인의 국내 규율입니다. 한국은행과 은행권은 원화 연동 자산인 만큼 금융안정과 통화정책 차원에서 은행 중심의 제한적 발행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반면 핀테크·가상자산 업계는 은행 과반 지분을 법률로 일률 요구하는 것과 준비자산을 안전하게 관리하는 것은 별개 문제라며, 자본금 요건을 갖춘 비은행 사업자의 참여를 주장합니다.
| 구분 | 미국 | 독일 | 한국 |
|---|---|---|---|
| 입법 단계 | 스테이블코인법 시행, 시장구조법 상원 표결 임박 | 재무부 초안(9/9), 부처 협의·내각·의회 남음 | 의원안 10건, 정부·여당 통합안 미발의 |
| 다음 분기점 | 9월 15일 토론종결 표결 (60표 필요) | 2027년 1월 1일 발효 예정 | 9월 중 발의 및 공청회 |
| 핵심 쟁점 | SEC·CFTC 관할, 스테이블코인 리워드, 윤리 조항 | 1년 비과세 폐지, 기존 보유분 경과규정 | 발행주체(은행 vs 비은행), 권한 배분 등 5대 난제 |
| 보유자 수익 | 발행사 이자 지급 금지, 제3자까지 확장 추진 | 스테이킹·대여 소득을 자본소득으로 과세 | 미확정 |
| 세율 | 별도 논의 | 25% (연대부가세 포함 26.375%) | 기본법 논의와 별개 트랙 |
현장의 전망은 냉정합니다. 한 전문가는 법 통과 이후에도 12~18개월의 후속 정비가 필요하며, 첫 원화 스테이블코인의 공식 발행 시점은 2028년 상반기 이후가 될 것으로 내다봤습니다. 독일의 원천징수 개시 시점과 공교롭게 겹칩니다. 국내에서 ‘원화 스테이블코인 수혜주’라는 이름으로 거래되는 테마가 실제 매출로 전환되기까지는 상당한 시차가 있다는 뜻입니다.
결론: 투자자가 지금 봐야 할 네 가지 지표
첫째, 9월 15일 표결의 가부보다 ‘스테이블코인 리워드’ 조항의 최종 문구입니다. 가결 자체는 헤드라인이지만, 무이자 원칙이 유지되는지 완화되는지가 자금 흐름을 실제로 바꿉니다. 은행권이 이 조항의 변경을 요구하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둘째, 시가총액이 아니라 거래량과 회전율입니다. ‘스테이블코인 시총 감소’라는 헤드라인만 보고 산업의 쇠퇴로 읽으면 6월의 사상 최대 거래량을 설명할 수 없습니다. 셋째, 토큰화 국채 잔액입니다. 이 숫자가 계속 늘어나는 한 스테이블코인 잔고 감소는 이탈이 아니라 이동으로 해석하는 편이 정확합니다.
넷째, 한국의 9월 발의 여부입니다. 이달 안에 정부·여당 통합안이 국회에 올라가느냐가 연내 입법의 갈림길이고, 5대 난제 가운데 발행주체 문제가 어떻게 정리되는지에 따라 은행주와 핀테크·거래소 관련주의 손익이 정반대로 갈립니다. 발의 자체보다 그 안에 담긴 은행 지분 요건을 확인해야 합니다.
정리하면, 지금 스테이블코인 시장에서 벌어지는 일은 붕괴가 아니라 분화입니다. 무이자로 빠르게 도는 결제용 달러와, 수익을 돌려주는 국채형 토큰으로 시장이 두 갈래로 나뉘고 있습니다. 페이팔이 잔고 감소를 감수하면서도 발행 인프라에 투자한 것은 이 분화를 전제로 한 선택이며, 9월 15일 표결은 그 분화를 가속할지 늦출지를 정하는 자리입니다. 다만 제도 일정과 시장 반영 사이에는 수년의 시차가 존재하므로, 입법 뉴스 하나에 테마주를 추격 매수하는 방식은 위험 대비 보상이 좋지 않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