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다주택자에게 2년짜리 절세 출구를 열어줬습니다. 그런데 한국은행이 직접 계산해 보니, 집값이 지금 속도로 오른다고 믿는 다주택 가구의 91%는 파는 것보다 버티는 쪽이 유리했습니다. 세금을 깎아 줘도 매물이 나오지 않는 이유가 숫자로 드러났습니다.
왜 지금인가: 8·13 대책 6주, 첫 성적표가 나왔다
한국은행이 9월 22일 공개한 금융안정 상황(2026년 9월) 보고서는 8·13 부동산 대책 이후 6주간의 시장을 처음 정면으로 평가한 공식 문서입니다. 결론부터 보면 성적표는 어중간합니다. 대책 발표 6주 시점 서울 아파트 매물은 약 7만 호로 과거 대책 발표 이후 평균(7만 호)과 사실상 같았고, 주간 매매가격 상승률은 0.16%로 과거 평균(0.10%)을 오히려 웃돌았습니다.
가격의 방향도 둘로 갈라졌습니다. 7월 27일 대비 9월 14일 기준으로 강남구는 1.28%, 서초구는 0.94% 하락한 반면, 중랑구(3.46%)·성북구(3.36%)·서대문구(3.15%)·강북구(2.92%)는 가파르게 올랐습니다. 고가 지역을 겨눈 세제가 그 지역만 식혔고, 수요는 중저가 지역으로 옮겨 갔다는 뜻입니다.
다만 이 글의 관심사는 ‘어디가 올랐나’가 아닙니다. 이번 보고서에서 정말 눈여겨볼 대목은 한은이 다주택자가 실제로 집을 팔 유인이 있는지를 직접 계산해 봤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세 가지를 따져보려 합니다. 첫째, 한은은 무엇을 어떻게 계산했는가. 둘째, 왜 세금 할인이 집값 기대를 이기지 못하는가. 셋째, 2022년에도 같은 카드를 썼는데 그때와 지금은 무엇이 다른가입니다.
한은이 실제로 계산한 것: 2030년 순자산으로 따져본 손익
한은의 시뮬레이션은 단순하지만 정직합니다. 다주택 가구 앞에 두 갈래 길을 놓고 2030년 시점의 순자산을 비교했습니다. 하나는 2027년에 집을 팔아 양도소득세 중과 한시 완화(다주택자에게 붙는 가산세율을 일정 기간 적용하지 않는 조치) 혜택을 받은 뒤 매도대금을 국고채 5년물 금리로 굴리는 길입니다.
다른 하나는 집을 계속 들고 가면서 높아진 보유세를 내되, 임대수익률 3%와 집값 상승에 따른 자본이득을 챙기는 길입니다. 두 경로의 최종 순자산을 견줘 ‘파는 쪽이 더 유리한 가구’가 얼마나 되는지 뽑아낸 것이 이번 분석의 핵심 숫자입니다.
결과는 집값 기대에 따라 극적으로 갈렸습니다. 앞으로 5년간 아파트값이 연평균 1.1%(최근 전국 연평균 수준) 오른다고 보면 팔 이유가 있는 다주택 가구는 30.4%였지만, 8.2%(최근 서울 아파트 상승률 수준)를 기대하면 8.9%까지 떨어집니다. 나머지 91.1%에게는 버티는 편이 합리적이라는 얘기입니다.
| 향후 5년 연평균 기대 상승률 | 해당 수치의 근거 | 2027년 매도 유인 가구 비중 | 체감 |
|---|---|---|---|
| 1.1% | 전국 연평균 상승률 | 30.4% | 10가구 중 3가구 |
| 3.5% | 수도권 연평균 상승률 | 19.8% | 5가구 중 1가구 |
| 8.2% | 최근 서울 아파트 상승률 | 8.9% | 11가구 중 1가구 |
왜 세금 할인이 기대심리를 이기지 못하는가
구조를 뜯어보면 당연한 결과입니다. 양도세 중과 완화는 매도하는 그 순간 딱 한 번 받는 할인입니다. 반면 집값 상승에 따른 자본이득은 보유 기간 내내 복리로 쌓입니다. 한 번 받는 세금 할인이 아무리 커도, 연 8%대 복리를 5년간 포기하는 기회비용을 넘어서기는 어렵습니다.
종합부동산세 기준이 주택 수 중심에서 주택가액 중심으로 바뀌고 있다는 점도 계산을 바꿉니다. 2028년부터는 보유 주택 수와 상관없이 집값 기준으로 같은 세율표를 적용하는 방향이 제시돼 있습니다. 강남 고가 주택 1채를 가진 쪽에는 부담이지만, 중저가 주택을 여러 채 가진 쪽에는 상대적으로 유리한 구조입니다. 대책 이후 강남·서초는 내리고 중랑·성북·강북이 급등한 흐름도 이 구조와 정확히 맞물립니다.
게다가 8.2%라는 기대치는 하늘에서 떨어진 숫자가 아닙니다. 최근 실제로 겪은 상승률이고, 사람들은 가장 최근의 경험을 미래에 그대로 대입하는 경향(앵커링)이 있습니다. 한은이 “신규 주택이 실제 공급되기까지 상당한 시일이 걸리는 상황을 감안할 때 이번 대책의 효과는 향후 주택가격 기대에 크게 좌우될 것”이라고 못 박은 것도 그래서입니다.
금융 쪽 지표도 이 기대를 뒷받침합니다. 가계대출 증가액은 5월 9조 3,000억원에서 8월 2조 6,000억원으로 둔화했지만, 2분기 주택 관련 대출은 12조 2,000억원 늘었고 금융취약성지수(FVI)는 2분기 말 46.5로 상승세를 이어갔습니다. 돈줄이 완전히 잠기지 않은 상태에서 상승 기대가 유지되면, 매물은 나오지 않고 대기 수요만 쌓입니다.
낙관론 vs 신중론, 그리고 2022년이 남긴 교훈
시장의 평가는 팽팽합니다. 낙관 쪽에서는 송승현 도시와경제 대표가 “규제 완화가 수요를 자극할 수 있다는 우려는 있지만 실수요자가 집을 못 사는 상황도 문제”라며 공급 확대의 순효과를 강조했고,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정책대출 소득요건 개선이 목표 계층의 대출 접근성을 높인다고 평가했습니다.
반대편은 더 신랄합니다. 고준석 연세대 상남경영원 교수는 “속도를 높이는 대책이라 심리 안정엔 도움이 되겠으나 트리플 상승세를 잡기엔 제한적”이라며 기존 매물 대책의 부재를 지적했고, 서진형 광운대 교수는 착공 기간 단축이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고 봤습니다. 한문도 서울디지털대 교수는 대출 한도 확대 자체가 “집값을 자극하는 잘못된 신호”라고 비판했으며, 김덕례 주택산업연구원 실장은 “세제 개편으로 시장을 바꿀 정도의 매물 출회와 공급 확대 효과는 제한적”이라고 평가했습니다.
역사적 대조군도 있습니다. 2022년 5월 10일부터 시행된 양도세 중과 한시 배제 당시 서울 아파트 매물은 약 5만 건에서 5만 8,000건 안팎까지 늘었습니다. 효과가 있었지만 폭발적이지는 않았다는 뜻입니다. 더 중요한 차이는 당시가 금리 급등으로 집값 하락 기대가 퍼지던 때였다는 점입니다.
| 구분 | 2022년 조치 | 2026년 8·13 조치 |
|---|---|---|
| 적용 방식·기간 | 2022.5.10~2026.5.9 조정대상지역 2년 이상 보유분 중과 배제 | 2027~2028년 중과 한시 완화, 2026.5.10 매도분까지 소급 |
| 서울 아파트 매물 | 약 5만 건 → 5만 8,000건 안팎 | 대책 6주 후 약 7만 호(과거 대책 평균과 동일) |
| 보유세 방향 | 완화 국면 | 가액 중심 전환, 고가주택 부담 강화(입법예고 단계) |
| 사전 매도 선반영 | 해당 없음 | 유예 종료 앞둔 2~5월 매도 집중, 상반기 서울 거래 약 3만 건(전년 대비 20~30% 증가) |
| 시장의 가격 기대 | 금리 급등기 · 하락 기대 우세 | 상승 기대 우세(한은, 기대 억제 필요성 강조) |
필자의 종합 판단은 이렇습니다. 이번 양도세 완화는 매물을 ‘만드는’ 정책이 아니라 이미 팔기로 마음먹은 사람의 출구를 넓혀주는 정책에 가깝습니다. 게다가 유예 종료를 앞둔 올해 2~5월에 매도가 몰리면서 상당한 물량이 이미 시장에 나왔습니다. 1~4월 주택 취득자금 가운데 증여·상속이 약 3조 6,600억원에 달할 만큼 ‘팔지 않고 넘기는’ 선택도 활발했습니다. 기대심리가 꺾이지 않는 한, 2027~2028년 창구가 열려도 나오는 물량은 완만할 가능성이 큽니다.
그래서 지금 무엇을 봐야 하는가: 네 개의 판별 지표
첫째, 기대 상승률 그 자체입니다. 한은 계산이 말해 주는 바는 분명합니다. 기대치가 8.2%에서 3.5%로만 내려와도 매도 유인 가구는 8.9%에서 19.8%로 두 배 이상 늘어납니다. 그래서 공급 대책의 성패보다 먼저 확인할 것은 집값 전망 심리지표가 꺾이느냐입니다. KB주택시장 리뷰 9월호가 부동산전망지수의 두 달 연속 하락을 짚은 것은 그 첫 신호일 수 있습니다.
둘째, 서울 아파트 매물 7만 호 선의 돌파 여부입니다. 지금은 과거 대책 평균과 똑같은 자리에 머물러 있습니다. 이 숫자가 의미 있게 위로 뚫리면 락인(lock-in·세금 부담 탓에 팔지 않고 묶어두는 현상)이 풀리기 시작했다는 증거이고, 계속 옆걸음이면 한은 계산이 맞았다는 뜻입니다.
셋째, 종부세 개편의 입법 확정 여부입니다. 가액 중심 전환과 1세대 1주택 실거주 공제 상향(12억원→14억원, 비거주 시 9억원)은 아직 입법예고 단계로 국회 심의에서 바뀔 수 있습니다. 보유세 부담이 최종적으로 얼마나 무거워지느냐가 한은 시뮬레이션의 ‘보유 경로’ 수익률을 직접 깎는 변수입니다.
넷째, 가계대출 증가폭의 재가속입니다. 8월 2조 6,000억원까지 둔화한 흐름이 9~10월에 다시 커지면, 정부는 공급 대책이 아니라 대출 총량·DSR(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 카드를 다시 꺼낼 공산이 큽니다. 한은이 금융취약성지수 상승과 함께 가계대출 확대 가능성을 경고한 것은 추가 조치의 명분이 쌓이고 있다는 신호로 볼 수 있습니다.
정리하면, 이번 대책의 운명은 택지 몇 만 호가 아니라 사람들의 머릿속 상승률에 달려 있습니다. 매수를 검토하는 실수요자라면 “매물이 늘어날 테니 기다리자”는 전제부터 재점검해야 하고, 다주택자라면 2027~2028년 창구를 ‘모두가 몰릴 세일 기간’이 아니라 본인 포트폴리오의 지역별 기대수익률로 개별 계산할 문제로 다뤄야 합니다. 세금은 계산할 수 있지만 기대는 계산할 수 없고, 이번 시장을 움직이는 쪽은 후자입니다.
